밝은 명상글

탄트라 비젼 (tantra vision) 오쇼 라즈니쉬 강의

수부티의 여행기 2021. 9. 5. 21:14

오천년 전 힌두교의 서열 1위 신 시바는 그의 연인 데비에게 112절로 이루어진
탄트라 방편들을 전수했다. 그것의 이름은 비그야나 바이라바 탄트라이다.
여기서 비야그나는 의식을 말하고 바이라바는 초월을 의미하며 탄트라는 방편을 말한다.
그래서 이책의 원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의식초월방편)이 된다.


112절의 탄트라중 49절

그토록 깊은 포옹속에서 그대의 감각은 나뭇잎처럼 떨린다.
이 떨림속으로 들어가라.

오쇼 라즈니쉬의 강의를 소개한다.

이 포옹속에서, 이 깊은 교류속에서 그대의 감각은 나뭇잎처럼 떨릴것이다.
그 감각의 전율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두려워 안다.
섹스 속으로 들어갈때 그대 몸이 멋대로 움직이도록 허락하라.
그대 몸이 마음껏 움직이도록 허락하게 되면 섹스의 동작이 그대 전신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섹스 에너지가 성기에 국한되어 있을 때믄 통제가 가능하다.
그러난 섹스에너지가 전신으로 퍼질때 그대는 더이상 통제할수 없게 된다.
그대는 나뭇잎 처럼 떨릴 것이다.
그대는 울부짖기 시작할 것이다.
몸이 성 에너지에 불붓게 되면 이것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몸짓을 억제한다.
이 사회 전체는 특히 여성의 모든 몸짓을 통제하고 있다.
엿어의 에너지의 확산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은, 여성의 육체는 굳어져 가고 있다.
남자는 여자들에 대해 무엇인가 행사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 남자들은 이런식으로 여자들을 억압하고 있는가?
그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이 깨어나게 되면, 여성의 몸에 있는 섹스에너지가 불붓게 되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그녀를 만족시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성은 고리형 오르가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남성은 그런 오르가즘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남성은 단 한번의 오르가즘 밖에 없다.
그러나 여성의 오르가즘은 수많은 오르가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남성의 오르가즘이 단수로 되어 있다면 여서의 오르가즘은 복수로 되어있다.
어떤 여성이라도 최소한 세게의 오르가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성은 단한번의 오르가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남성의 오르가즘이 끝나게 될때 여성의 오르가즘은 그제서야 잠이 깬다.
여성의 오르가즘은 그때부터 보다 높은 단계의 오르가즘으로 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남성은 오르가즘을 경험한후 깊은 수면의 상태로 떨어져 버린다.
이와 반비례해서 여성의 감각은 점점 더 불붙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여성은 결코 만족할수 없다.
남성은 결코 여성을 만족 시킬수 없다.
그 순간 보다 높은 단계로 올라 가고 싶은 그녀의 오르가즘이 억눌려 질때
그녀는 즉시 또다른 남자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일부일처제를 체택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성을 충족시키는 것 보다 차라리 억눌려 버리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80% 이상의 여성들이 오르가즘이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있다.
그들은 단지 아이를 낳아주고 남성들의 배설행위를 돕는 보조역활을 할 뿐이다.
그들은 남자를 만족시키는 것에 흡족해 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결코 만족할수 없다.
보라. 여성들의 이 슬픔을 보라
여성들의 이 고통을 보라
이 때문에 여성들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는다.


떨린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섹스의 매동작속에서 떨리기 시작할때 에너지는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그때 세포 하나하나마다 에너지는 진동하기 시작한다.
하나하나의 세포는 모두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모든 세포는 성 세포이기 때문이다.
두개의 성세포가 만나서 그대의 탄생이 이루어졌다.
그대의 몸이 형성되었다.
그대의 모든 세포가 떨리기 시작하는 것이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은 그대 몸속에서 그대자신의 반대극성과의 만남 때문이다
이 세포속에는 개발되지 않은 이성의 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떨림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마치 동물과 같아진다.
인간은 원래가 동물이었다.
인간이 동물이라고 해소잘못 된것은 하나도 없다.

거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가 떨고 있다.
뿌리까지 떨리고 있다.
잎사귀 하나하나마다 모두 신들린 듯이 떨고 있다.
섹스는 거대한 바람이다.
그대속에서 거대한 에너지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대여 전율하라.
그 전율속으로 들어가 전율자체가 되라.
그대 전신세포가 일어나 춤추게 하라.
그대 연인의 세포 역시 춤출 것이다.
그럴때만 두사람의 만남이 가능하다.
여기 이 만남은 결코 육체만의 만남이 아니다.
이 만남은 바로 그대 자신의 생명의 에너지와의 만남이다.

들어가라.
이 떨림속으로 들어가라.
방관자로 남아 있지 마라.
관객이 되지 마라.
마음은 관객이다.
방관자로 서있지 말고 떨어라.
떨림속으로 뛰어 들어라.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떨림 자체가 되어라.
떨림은 그대 몸에 국한된 겅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 존재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대는 이제 떨리는 나뭇잎이다.
여기 두개의 마음이 있다.
두개의 육체가 있다
이 두개의 육체는 떨리는 두개의 에너지로 변했다가 마침내 하나의 원을 이룬다.
하나의 순환을 이룬다.

이 순환 속에서 무슨일이 일어 나는 가?
그대는 우주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대는 우주와 둘이 아니다.
이 떨림을 통해서 그대는 우주가 된다.
이 순간이야 말로 위대한 창조의 순간이다.
그대의 육체는 유동적으로 될 것이다.
그대는 하나의 액체가 될 것이다.
하나의 흐름이 되어 서러가 서로속으로 스며 들어 가게 된다.
여기에 마음은 사라진다.
분별이 시작된다.
그대는 전체가 된다.
하나가 된다.
이것을 '아드바이타'(advita)
즉 불이원(不二元)-(세상과 나는 떨어진 둘이 아니다. 세상과 나는 하나이다.란뜻)
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대는 더이상 세상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대는 더이상 이 세상속에서 이방인이 아니다.
지금부터 그대는 존재의 본질이 그대의 집이 된다.
'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고 느끼는 순간,
모든 걱정은 사라져 버린다.
여기에 싸움이 있을 수없다.
이것을 노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샹카라(shankara)는 아드바이타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대 역시 자신의 언어로 그것을 이름 붙일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깊은 사랑의 포옹속에서 느끼는 것이 보다 쉬운 일이다.

살아라.
그리고 진동하라.
떨림자체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