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조(馬祖)는 서기 709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육조혜능 이후 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일찌기 육조혜능은 남악회양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대의 발아래서 말 한 마리기 나외 천하 사람들을 발길질로 차 죽이리라.
마조는 어린시절부터 절에서 지냈으며, 이십세가 되기 전에 출가승을 걷고 있었다.
회양은 육조혜능의 수제자였다
회양은 좌선을 하고 있는 마조에게 말한다.
"대덕"은 무엇을 얻으려고 좌선을 하는가?
마조가 대답했다.
불성(佛性)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자 회양은 부근에 있던 기왓장 하나를 집어 들더니
마조 앞에서 갈기 시작했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은 갈아서 무엇에 쓰실 겁니까?
회양이 대답했다.
"거울로 쓰려고 하네".
이에 마조가 빈정거렸다.
"그런다고 기왓장이 거울이 되겠습니까."
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양이 일갈했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수 없다면 좌선으로 부처가 되겠는가. "

禪의 뜻은 고요함, 또는 맑음이 본 뜻이다.
禪의 이야기는 깊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간혹 사람들은 깨달음이 부처라고?
하지만 불성(buddhaood)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성은 이미 그대 본성이다. "얻는다"는 말은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것을 방임하고 그대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뿐이다.
그러면 붓다가 깨달음의 광채를 뿌리며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을 보게 될것이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수 없듯이 좌선으로 붓다가 될수없다.
부처는 거울이다. 부처는 그저 비출 뿐 그는 반응하지 않고 그는 항상 거울처럼 비어 있다.
거울 앞으로 사물은 오고 가지만 거울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마조가 깨달음을 얻어 강서에서 머물렀는데
어느날 "대매"라는 승려가 마조를 친견하고 나서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현재의 이 마음이 곧 부처다.(즉심즉불卽心卽佛)
이말을 듣고 대매는 문득 깨달았다.
마음밖에는 부처가 없다.는 혜능의 가르침을 마조는 그대로따랐다.
현제의 마음(卽心)에는 모든것이 들어 있다.
부처도 그안에 들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조건이 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조건이다. 비어있는 마음 그 자체가 부처의 마음이다.
비어있는 공간, 생각이 일어나기 전 자각, 생각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곧 부처다.
달은 어디로도 자기 그림자를 던질 생각이 없고
바다는 달을 묵게할 의도가 없네.
바다의 물은 얼마나 맑고 청명한가.
禪의 스승들은 죽기 전에가르침 전체를 압축하는 짧은 한시 한구절을 남기는 전통이 있다.
그것은 두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는 그들이 죽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시는 기쁨과 만족을 보여 준다.
마조는 좌선 의자에 앉으면 언제나 침을 '퉤" 하고 뱉었다.
제자가 어느날 물어보았다. 왜 침을 뱉으 십니까?
산하 대지 삼라만상이 모두 내 눈안에 들어 오는 것이 싫어서 그랬다.
볼만한 구경거리를 왜 싫어 하십니까?
너에겐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싫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경계 입니까.
보살""의 경계이다.
좌선의자 앞에는 삼라만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명상을 아는 제자라면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은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선은 논쟁이 아니다.
존재계의 매 순간은 교류를 위한 순간이다.
그대가 깨달음을 얻을수 있는 특별한 순간은 없다.
매 순간이 특별하다. 매 순간이 그대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준다.
아름다운 일출,석양,별이 총총한 하늘,그저 침묵만이 있는 이 순간.
아무말이 필요 없다.주시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면 모든 환영이 사라진다.
한 중이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 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자네의 "뜻"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다시 중이 똑같은 질문을 던지자 마조는 한대 쥐어 박더니 말했다.
자네를 때리지 않았다면 제방의 禪지식이 나를 비웃을 것이다.
부처의 의미와 메시지는 바로 (그대)이다.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이유는 "그대"를 깨우기 위함이다.
마조가 중을 때린 이유는 그대 자신이 곧 의미 이면서 의미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곧 붓다이다. 그대를 위해 달마가 온 것이다.
방거사가 마조에게 물었다.
일체의 법(dharma)과 무관한 사람은 어떤 사람 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서강의 물을 다 마시고 오면 그때 가르쳐 주지.
이말을 듣고 방거사가 문득 깨달았다.
그대자신은 분노도 탐욕도 사랑도 자비도 아니다.
그대가 이름붙일수 있는 모든 것은 그대가 아니다.
그대 이름은 이름 붙일수 없는 주시자 이다,그 주시자는 그대의 깊은 곳에 숨어 있다.
그 주시자는 거울처럼 지나가는 모든것을 비춘다.
반응하지 마라. 그저 비추라 "빈거울"처럼..
구름은 오고 가지만 하늘은 비어 있다.하늘은 측량할수 없을 정도로 넓다.
마찬가지로 그대 내면에도 똑같이 무한한 하늘이 있다.
그대가 서있는 지점은 외적인 무한함과 내적인 무한함의 정중앙이다.
우주의 중심이다.내적인 무한함은 훨씬 더 신비하다.
그대는 거울처럼 모든것을 비춘다.
하지만 아무것도 그대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물위에 비친 달 그림자는 여럿이지만 정작 달자체는 하나인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물줄기는 여럿이지만 물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수없이 많은 삼라만상이 있지만 공(空)안에는 아무 차별도 없다.
"빈마음"은 모든것의 근원이다.
마조가 남긴 禪의 핵심의 말은 "일면불(日面佛),월면불(月面佛),
삶을 의미하는 태양을 마주보고 있든,
또는 죽음을 상징하는 달을 마주보고 있던 그대의 불성에는 아무 차이도 없네.
그대가 어둠속에 있든, 밝은 빛속에 있든 그대의 불성은 항상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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